광고

이호재 해제 및 서평●변찬린, 『선(禪), 그 밭에서 주운 이삭들』

이호재 | 기사입력 2022/04/22 [13:56]
문명전환기의 예언자, 새 시대의 전도자 변찬린

이호재 해제 및 서평●변찬린, 『선(禪), 그 밭에서 주운 이삭들』

문명전환기의 예언자, 새 시대의 전도자 변찬린

이호재 | 입력 : 2022/04/22 [13:56]

문명전환기의 예언자, 새 시대의 전도자 ᄒᆞᆫᄇᆞᆰ 변찬린

ᄒᆞᆫᄇᆞᆰ 문명록, 동방 르네상스의 설계도를 선포하다.

 

세간에 묻혀있었던 ᄒᆞᆫᄇᆞᆰ 변찬린(1934-1985)의 구도수상록 (), 그 밭에서 주운 이삭들이 출간되었다. 성경의 원리사부작 (한국신학연구소, 2019)이 개정신판으로 발간된 데 이어 ᄒᆞᆫᄇᆞᆰ 사상의 전모를 알 수 있는 (), 그 밭에서 주운 이삭들(문사철, 2022)의 발간은 한국 종교계의 큰 이슈가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은 평자가 학창시절 변찬린 선생으로부터 검은 대학노트에 쓰인 초본을 건네받아 밤을 새워가며 단숨에 읽었던 인연이 깊은 책이기도 하다. 

 

저자는 생사의 고비에서 유언시집인 선방연가(禪房戀歌)(1972)를 낸 다음 극한의 한계상황 속에서 성경의 원리사부작을 저술한다. 성경의 원리사부작은 당나라의 종파불교가 신라에 재현되자 화쟁의 혼으로 통불교의 전통을 세운 원효와 같이, 서구 신학의 대리전 양상이 한국 그리스도교에 재현되자 ᄒᆞᆫᄇᆞᆰ은 한국 종교전통의 도맥인 선맥(僊脈)으로 성서의 변화와 부활사상을 이해지평에서 융합한 독보적인 성서해석서이다. 이는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옥스퍼드 한국성서핸드북(The Oxford Handbook of the Bible in Korea(Oxford Handbooks)(2020)에 소개하고 있다. 바로 세계 그리스도교(신학)에 소개된 선맥과 부활사상의 해석학적 준거도 이 책에서 언급된다.

 

이 책은 ᄒᆞᆫᄇᆞᆰ선생(ᄒᆞᆫᄇᆞᆰ 변찬린)동방의 빛, 화쟁의 혼, 새ᄇᆞᆰ에게란 부제로 시작한다. 동방의 빛(東明)은 새ᄇᆞᆰ이고, 화쟁의 혼(元曉 : 원효는 첫새벽이란 이두어)도 새ᄇᆞᆰ이다. 동방의 빛과 화쟁의 혼이 내재된 동방의 구도자 새ᄇᆞᆰ에게 동방 르네상스를 구현하라는 역사적 당부를 위촉한다. 동방 르네상스는 오래된 미래인 선맥(僊脈)의 풍류정신을 일깨우는데서 시작한다. 자신의 삶을 표현한 번개와 피와 아픔과 고독은 그의 삶의 동반자이자 구도자의 숙명을 압축한 언술이다. 세상의 달콤한 명예와 차등적인 권력적 위계과 유토피아적인 정치적 구호로 정교하게 짜여진 문명의 체계 속에서 구도자의 길을 가는 것은 죽음의 길이다. 그러나 문명전환기의 예언자이자 새 시대의 전도자란 역사적 자의식 속에 저자는 절정의 종교경험인 번개체험과 구도 과정의 수난과 고난을 담지한 의 처절함, 타락과 무명의 세상에서 뭇 생명의 아픔을 체화하며, 누구 하나 이해하는 자 없는 절대고독의 자리에서 역사의 십자가를 지고 보살행을 감행한다ᄒᆞᆫᄇᆞᆰ 선생의 구도증언이자 동방 르네상스의 구도자 새ᄇᆞᆰ 에게 보내는 애틋하고 간절한 사랑과 소망의 편지이다. 81차례나 외쳐부르는 ᄇᆞᆰ은 잠자는 독자의 가슴에 번갯불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공명한다.

 

종교의 주형(鑄型)에 찍히고 교조(敎條)의 성()에 유폐당하고 관념의 노예로 전락되고 변증(辨證)의 약장사로 장광설(長広舌)하면 그 혼은 죽은 반석이 되어 모세의 지팡이로 때려도 생수(生水)를 낼 수 없다.

 

ᄇᆞᆰ이여

그대는 날개 돋친 비존(飛存)임을 자각하라. 한 종교의 죄인, 한 사상의 괴뢰가 되지말라. 한 성인(聖人)의 고제(高弟, 뛰어난 제자), 한 주의(主意)의 주구가 되지말라. 한 당의 대변자, 한 이념의 기수가 되지 말라. (중략)

 

ᄇᆞᆰ이여

내 군더더기 말로 다시 이르노라. 한 우물 안의 개구리, 한 계절의 쓰르라미가 되지 말라

 

아침의 솟는 버섯, 여름밤에 죽은 하루살이가 되지 말라. 썩은 웅덩이의 미꾸라지는 북해(北海)에 잠긴 곤()의 꿈을 모르고 연못 속의 이무기는 대해(大海)에 숨은 잠용(潛龍)의 뜻을 모른다. 지난날 너와 나도 쑥대 무성한 폐원(廢園)에 앉아 나래친 소조(小鳥)였구나. 허나 이제는 역사의 성인(成人). 성인(聖人)의 알을 깨고 대곤륜(大崑崙)을 덮을 대붕(大鵬)이 되어 저 가없는 우주를 소요하잣구나. (55-56)

 

첫 글이 시작된 1964년부터 오늘날까지 58, 마지막 글이 쓰여진 해를 기준으로 하면 40년이 지난 후에 독자들과 만나는 셈이다. 마치 인류문명과 한국의 운명을 예견한 듯 그의 탁월한 문학적 소양은 때로는 격문으로, 때로는 산문으로, 때로는 시로써 동방 르네상스의 파노라마는 웅장하게 독자의 가슴을 파고 든다.

 

건곤(乾坤)밖에 독보(獨步)하다 광장으로 돌아와 씨알과 혁명(革命)한다. 천외천(天外天)을 소요하다 역사의 가운데로 돌아와 현실에 참여한다. (71),

 

십자가의 보살행)공동의 각은 역사의 방향이며 사랑의 공동체는 창조적 진화의 내실이며 수렴임을 깊이 대각하자. (211)

 

나는 다리()입니다. 낡은 세대와 새 세대를 잇는 가교(架橋)입니다. 역사 시대와 영()의 시대를 잇는 대교(大橋)입니다. 마지막 때의 예언자이며 새 시대의 전도자입니다. (215)

 

새 지평에 새 무리가 도래하고 있습니다. 불꽃 같은 눈동자로 이 땅을 굽어보십시오. 지금 내 앞에서 위대한 하나님이 한 떼의 신민을 이끌고 당당하게 오고 있습니다. 부활한 고성(古聖)들의 환한 얼굴을 보십시오. 그 아롱진 색동 만다라가운데 내 얼굴도 있게 하십시오.(216)

 

대무(大巫)는 새날을 개명하는 한국인의 사명입니다. 화쟁(話諍)은 한국 혼의 저력입니다. 내 조국은 더러운 세계사의 죄악을 속죄하기 위하여 보혈을 흘리고 있지 않습니까? (231)

 

ᄒᆞᆫᄇᆞᆰ선생의 온전한 삶의 기록이 부재한 상태에서 이 책은 그의 사유체계의 전모를 알 수 있는 유일한 기록이다. 각 시대와 문화적 맥락에 따라 장자, 채근담, 팡세, 명상록등이 저술되었다면 동방 르네상스의 개벽에 맞추어 발간된 , 그 밭에서 주운 이삭들은 동방 르네상스의 개벽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다.

 

ᄒᆞᆫᄇᆞᆰ과 새ᄇᆞᆰ의 앙상블로 펼쳐지는 동방 르네상스의 우주합창곡 

 

이 책은 한반도를 중심무대로 설정하여 ᄒᆞᆫᄇᆞᆰ과 그의 도반인 새ᄇᆞᆰ어 어울려 온 만물을 조율하여 새 문명의 서곡을 알리는 우주적 드라마이자 우주합창곡이다. 동방 르네상스의 설계도가 오롯이 내포되어 있다.

 

동방 르네상스의 집행자는 새ᄇᆞᆰ이다. 유교적 인간인 군자, 도교적 인간인 진인, 불교적 인간인 보살, 그리스도교적 인간인 의인 등 세계경전의 궁극적 인간을 포월하는 동방의 구도자 ᄇᆞᆰ종교의 그물, 사상의 거미줄, 정치의 낚시에서에서 초탈한 자유인이다. 그는 결코 특정 종교의 대변인이 아니고, 특정 권력의 주구도 아니며 특정 이데올로기와 사상의 나팔수가 되어서는 안된다. ᄇᆞᆰ은 낡고 죽어가는 문명의 비판자이자 우주적 차원의 천지굿이라는 문명의례를 집행하는 우주적 사제이다. 이런 통과의례를 통하여 만물을 제자리에 회복시키고, 만물의 영장으로서 인간의 본래 모습을 되찾아야 한다.

 

물질이 개벽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구호처럼 물질문명의 발전에 따른 인간의식의 고양이 선행되지 않고는 분열과 반복의 현대문명이 과학적 유토피아가 제시하는 미래상이 결코 분열적 인간의 탐욕과 투쟁과 전쟁의 양상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못한다. 즉 인간의 근본적 변혁이 전제되지 않는 과학혁명과 물질문명의 환상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기제로 작동할 수 없다. 과학문명의 발전에 따른 시공의 확장은 필연적으로 사유공간의 확장을 초래하고, 확장된 인식공간은 인격변화를 동반하기 마련이다. 궁극적 인간의 가능성과 지향점에 대해 이 책은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노장(老莊)의 사유체계와 불교의 화엄세계관에서 역사적 인식의 빈곤을 느끼고, 그리스도교의 직선적 세계관에서 여유로운 인식공간의 결핍을 느끼거나 유교의 현실적 무능함에 답답함을 체감하고, 과학적 유토피아의 허상에 돌파구를 찾고자 하는 구도자들은 이 책을 보라.

 

우주를 순례하는 구도자. 잠시 지구별에 와서 하나님과 악마를 만나고 성인(聖人)들과 연인들을 만나고 비의(秘義)의 내면(內面) 성실과 고독으로 뭉친 핵 그 마음의 핵력(核力)을 개방하기 위하여 홀로 고행한 무명한 자각자(自覺者) 여기 누워있다.(257)

 

이 책이 가진 깨달음의 높이와 지성의 두께와 행동의 넓이는 담대하고 장쾌하고 온 우주를 껴안고도 여유롭다. 동방 르네상스의 설계도는 성긴 것 같지만 새어나갈 수 없다. 책에 수록된 한 글자 한 글자가 우주를 순례하는 자각자가 번개와 피와 아픔과 고독의 선적 공간에서 외치는 하늘소리이기에 새ᄇᆞᆰ의 가슴에 불을 붙인다. 가슴에 타오르는 불은 그동안 잠자고 있던 한국인의 종교적 영성에 연쇄반응을 일으켜 대폭발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할 것이다.

 

수천 년동안 수난과 고난의 세계사적 책무를 감내해 온 한국의 축적된 종교적 영성의 폭발로 동방 르네상스의 새벽을 우리가 열어제쳐야 한다. 이 책의 발간은 동방 르네상스의 시대를 선포하는 대선언이다. 이 책은 그런 힘을 가지고 있다.

 

해제 및 서평 이호재중국사회과학원에서 중국 종교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성균관대 교수로 재직했으며, 현재 자하원 원장이다. 관심 영역은 동서양 종교 사상 연구를 바탕으로 새로운 문명의 사유 체계를 구축하는 데 있다. '새 축 시대의 영성 생활인'이라는 생활 프로젝트를 세계화하는 데 있다. 주요 저서로는 포스트 종교운동(2018), ᄒᆞᆫᄇᆞᆰ 변찬린: 한국 종교 사상가(2017), 인생 지도(2017) 등이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한국의 신명(神明)사상과 신명공동체><한국 재래 종교의 '구원', 변찬린의 새 교회론 연구등이 있다.

 

  • 도배방지 이미지

많이 본 기사
1
모바일 상단 구글 배너